공지사항
커뮤니티 > 공지사항
"껍데기는 가라" 진정한 `나`를 찾는 사람들 덧글 0 | 조회 177 | 2018-04-25 00:00:00
관리자  

"껍데기는 가라" 진정한 '나'를 찾는 사람들

l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가운데는 자기 자신도 들어있다. 유사 이래 수많은 종교가 생겨났다 사라지고 또 번성하는 것은 초월적인 존재만큼이나 인간 자신에 대한 의문을 사람들이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l        현대에 들어와서는 수많은 심리테스트 프로그램들이 때로는 종교와 결합해서, 때로는 종교와 무관하게 이 같은 의문에 답하려고 하고 있다. 에니어그램은 인간의 성품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본래의 본성을 찾도록 가르쳐준다는 자아계발 프로그램으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한국 에니어그램 연구소에서 정기강좌를 열고 있다. 1997년 12월 연구소가 생겨난 이래 1만 5,000명 정도가 강의를 들었고 2001년부터는 매년 3,500명 정도가 강의를 들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 이 강좌와는 별개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심리테스트와 동호인 사이트도 무성하다.  

l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난 모습이 있다. 진짜 자기 모습을 찾아서 갖고 있는 개성을 활짝 꽃피우게 하자는 것이 에니어그램”이라고 연구소 소장인 박정자(62ㆍ성심수녀회)수녀는 말한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 에니어그램연구소. 28명이 모여 에니어그램 강좌를 듣고 있다. “어머니가 억지로 밀어서 왔다”는 청년부터 상사의 권유로 상사와 함께 온 30대 초반의 직장인, “결혼생활 15년 동안 아이들한테 냉담한 남편을 감싸기만 하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왔다”는 주부(40)까지 다양했다. 그 남편(43)은 “안 들으면 이혼한다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고 했다. 강좌는 박수녀가 에니어그램의 의미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박수녀는“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전략으로서 어떤 성격을 선택한다”며 “이렇게 형성된 자아는 실은 습관의 뭉치요, 관념의 덩어리일 뿐 진짜 자기가 아니다. 이런 자아는 탈이었음을 깨닫고 그 탈을 던져버릴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일깨워준다 .

l        이어 박수녀와 강사인 오경희(50)씨가 9개 성격을 사례를 들어가며 상세히 풀이를 해준다. “출세를 위해 헌신한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드라마 주인공들은 성공 지향적인 3번 유형” “몽상적인 4번 유형은 현재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에서도 자기를 좋아하면 싫어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로 달려간다, ‘만나면 시들하고 헤어지면 그리웁고’라는 노래가 바로 이들의 유행가이다”라는 설명에 참가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l        “6번은 책임감이 강한 반면 모든 것이 규범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을 사서 한다. 남편이 퇴근하겠다고 연락하고 늦게 오면 교통 사고 났다고 단정하고 벌써 애들 데리고 혼자 살 걱정을 한다”는 등 유형 풀이는 실생활과 밀착돼 있다.

l        특히 유형끼리의 충돌이 소개되자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많아진다. “장 중심인 1, 8, 9번은 스킨십을 아주 좋아하는 반면 머리 중심인 5, 6, 7번은 다른 사람의 몸이 살에 닿는 것을 싫어한다. 5번 남편과 9번 아내가 같이 사는데 자다가 9번 아내의 살이 닿으면 스킨십을 싫어하는 5번 남편이 무의식적으로 발로 차버리니까 아내는 참을 수 없었다. 에니어그램을 알고 아내는 남편을 이해했고, 남편은 아내를 안아주려고 노력하게 됐다”는 이야기에 고은하(43ㆍ주부ㆍ경기 광명시 철산동)씨의 눈물이 핑 돈다. 고씨는 5번 유형. 중2인 딸을 아끼면서도 딸이 엄마를 만지고 껴안고 냄새 맡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나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고민해오던 차였다.

l        이어지는 토론은 유형별로 모여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온 박모(24)씨는 8번 유형들과 체험을 나눈 뒤 “내가 화를 너무 잘 낸다는 말을 들으며 괴로웠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의 갈등으로 화제가 번져간다. 가족 중 누구는 몇 번인데 나랑 어떻다는 대화가 이어진다. 하지만 박수녀는 마무리 강연을 통해 “절대로 다른 사람의 성격을 찍지 말라”고 엄중히 당부한다. 자신의 성격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것. 외부로 드러나는 모습은 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가면이라는 것. 그러면 진짜 성격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유형별 성격 특성 뿐 아니라 6세 이전의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 체험이 판단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유형마다 중복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에니어그램은 성격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대응방식을 찾는 것으로 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성격 유형을 찾으면 성격에 맞는 발전방향 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박수녀는 “그렇게 가르쳤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l        “에니어그램이 어떤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대응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면 인간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하고 묻는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존귀한 존재이지 결코 이용법을 알기 위해 유형별로 분류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 타고난 본성대로 살면 행복하기에 그 본성을 찾기 위해, 처세술로서 선택해온 거짓 성품과 집착을 버리기 위해 유형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하나의 유형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것이 또 하나의 가면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l        에니어그램은 원래 이슬람교의 수피들이 제자들 하나하나에게 맞는 수행법을 일러주기 위해 생겨났으며 20세기 초 러시아의 영 성운동가인 게오르그 이바노비치 그루지예프의 소개로 서방에 소개됐다. 이어 칠레 출신 미국의 심리학자인 오스카 이차조의 연구로 체계화되었으며 1980년대 들어서 미국 심리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유형론과 발전방향 중심의 에니어그램이 한국에 와서 또 다른 진화를 겪고 있는 셈이다.

l        박수녀는 1986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성스테파노 수도원에서 에니어그램을 처음 접했다. 이후 성직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95년 평신도에게 처음 강연을 하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생각보다 깊고, 그 갈등의 뿌리는 실상 서로를 잘 모르면서 이해 받기를 원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넓혀오게 됐다. 당시 그의 강의에 감화된 서강대 캠퍼스 커플 4쌍의 후원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에니어그램 강좌를 듣는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번 수강생도 28명 가운데 22명은 가톨릭 신자였고 4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l        스스로 ‘다신교’ 신자라고 밝힌 현진삼(32)씨는 “감추고 싶은 나의 내면이 드러나 교육 받을수록 숨이 막혔다”고 했으나 박수녀가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이런 성격을 만들기도 한다”는 설명에 눈물을 훔쳤다. 꼭꼭 눌러놓았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l        박수녀는 사람은 저마다 다르지만 좋고 나쁜 사람이 따로 없다.  다만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이 있을 뿐. 자기의 본성을 찾고 그 본성이 갖고 있는 집착을 내려 놓으려고 매일 노력하는 가운데 인간은 밝고 환한 본래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첫 강좌를 들은 28명은 이런 참모습을 찾는 여정에 막 들어섰을 뿐이 라는 것이다.

 

[출처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