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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수료자과정오픈 18.12.27(목)am10:00-pm5:00 덧글 0 | 조회 166 | 2018-12-18 00:00:00
관리자  

에니어그램 유형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나 남을 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격정을 밝히 보면서 변화를 위한 수련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니어그램의 변화 과정은 버리고 떠나야 할 것과 확신하면서 동행해야 할 덕목에 집중하며 수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자기관찰이 수행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습관적으로 격정이 나를 사로잡는지 관찰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 자신이 격정을 사로잡고 타성적이고 기계적인 언행을 자제하였던가를 생각하며

의식적인 자기 기억을 수행한다.

월터 윙크는 ‘변화’를 위한 성서 연구에서 주창한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성서 연구는 파산 선고되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성서 연구는 지적 허위성만 조장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에니어그램의 지식 역시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더 큰 굴레를 씌우는 결과에 빠지게 되고 허위성이나 위선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우리를 ‘자아의 감방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수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단편적인 지식은 우리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에다 가두는 결과가 되고 만다.

티눈과 들보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격정의 속성은 남의 눈에는 명백히 보이지만 자신은 보지 못하기 쉽다.

그래서 자기관찰과 자기기억이 의식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로써 비로소 자신의 격정이 보이게 된다.

‘제 눈의 들보를 깨닫는’ 의식의 눈을 뜨게 된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흔히 자기 자신의 격정보다는 남의 격정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에니어그램 수련을 지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남의 격정을 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멘토링을 할 때, 깨어 있는 의식으로 감성과 지성과 본능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 관찰하면서도,

뜨거운 동정심을 갖고, 상대방의 가능성과 비전을 내다보면서 돕는 지혜와 분별력과 애정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함부로 남의 격정을 말하는 것은 비난이나 판단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누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안고 고민하며 씨름하는 ‘모자람이나 흠이나 문제’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하면,

그것은 필경 그의 격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 분명하다.

그런 경우라면, 비난이나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격정을 더욱 불붙게 하는 결과가 된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격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더불어 뜨거운 동정심이 필요하다.